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귄터 샤보프스키 (문단 편집) == 그 후 == 독일이 통일된 이후 1992년부터 1999년 까지 샤보프스키는 로텐부르크 안 데어 풀다의 지역 언론에서 서독 출신 언론인들과 저널리스트로 일했다. 과거 베를린장벽을 넘으려는 동독인 다수를 총격살해한 정책을 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.[* 그의 전향적 태도로 혐의에 비하면 낮은 형량이 구형됐다.] 하지만 1999년 12월에 수감되고 나서 10개월후인 2000년 12월 사면을 받아 풀려났다. 이후 샤보프스키는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신인 [[좌파당(독일)|좌파당]]에 대해 비판했다. 2001년 [[기민련]] 출신 정치인 프랑크 슈테펠의 고문을 맡았다. 이후 여러번의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양로원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 [[2015년]] [[11월 1일]] 베를린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. 사망당시 그의 나이는 향년 86세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8&aid=0003571398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